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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고구려비 (中原高句麗碑)

행키스 2009. 1. 4. 22:32

충주 중앙탑에 오면 근처에 국보205호인 '중원고구려비'가 있다

인근에 살면서 매번 지나쳐만 보았는데 이번 장미산등반의 입구가 고구려비옆길이라 아이들과 함께 자세히 비석감상을 하였다

우리가 알고있던 내용처럼 비문은 심하게 훼손되고 비석의 하단역시 잘려진 상태이지만,

오히려 그때문인지 고구려의 용맹함이 온몸에 전해오는듯 그 감동이 마음속깊이 스며든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중원고구려비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그 기념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